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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증시를 오랫동안 지켜본 투자자라면 누구나 기억할 것이다. 198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중반, 코스피가 미친 듯이 올랐던 그 시절을 말이다. 1986년부터 1989년까지, 코스피는 무려 7배나 폭등했다. 2005년부터 2007년까지는 3배 넘게 상승했다. 이 두 시기만큼 투자자들이 돈을 쉽게 벌었던 때도 없었다.

 

그런데 이 두 시기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달러가 약세였다는 것이다.

 

 

 

이상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한국은 수출 의존도가 높은 나라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하이닉스 같은 대형 수출기업들이 증시를 주도한다. 그런데 왜 달러가 약해질 때 증시가 더 오를까?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달러 약세는 수출기업에게 악재다. 같은 물건을 팔아도 원화로 환산하면 매출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였다.

 

수수께끼를 풀어보자

1980년대 대박장의 진짜 스타들

1986년부터 1989년까지의 광풍 속에서 가장 뜨거웠던 종목들을 살펴보자. 당시 '트로이카'라고 불렸던 상사주, 증권주, 건설주가 바로 그 주인공들이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내수 관련 업종이었다는 것이다.

 

특히 상사주의 경우가 흥미롭다. 상사라고 하면 수출을 떠올리기 쉽지만, 실제로는 수입업무가 더 중요했다. 원화가 강해지면서 해외 상품을 들여오는 비용이 줄어들었고, 동시에 국민들의 구매력이 높아지면서 수입 물량이 폭증했던 것이다.

 

2000년대 중반 불마켓!

2005년부터 2007년까지의 상승장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반복됐다. 이때의 스타는 조선주, 증권주, 기계주, 건설주, 부동산주였다.

조선업이 호황을 누린 이유도 수출보다는 중국의 급성장으로 때문이었다. 원자재 수입이 폭증하면서 유조선, 벌크선(화물선) 및 컨테이너 선의 수요가 급증했던 것이다. 결국 이것도 글로벌 내수 확대가 만들어낸 결과였다.

 

수출주는 언제 빛났을까?

그렇다면 삼성전자 같은 대형 수출주들은 언제 좋은 성과를 냈을까? 놀랍게도 달러가 강할 때였다.

1993년부터 2000년까지, 그리고 2010년부터 최근까지. 이 시기는 코스피가 큰 흐름 없이 횡보했지만, 개별 수출주들은 꾸준히 상승했다. 달러 강세 구간에서는 수출기업들이 환율 혜택을 받으면서 실적이 개선됐고, 이것이 주가 상승으로 이어졌다.

 

밸류에이션 재평가의 마법

그런데 왜 달러 약세 시기에 내수주들이 폭등할까? 핵심은 '밸류에이션 재평가'에 있다.

달러가 약해지면 원화가 강해진다. 원화 강세는 수입 물가를 낮춰서 인플레이션을 잡아주고, 국민들의 실질 구매력을 높여준다. 이는 내수 경기 활성화로 이어진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심리적 효과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시장을 더 매력적으로 보게 되면서 대규모 자금이 유입된다. 이때 저평가되어 있던 내수주들의 밸류에이션이 급격히 재평가되는 것이다.

 

 

다시 그 시절이 올까?

최근 달러 약세 신호들이 포착되고 있다. 만약 장기적인 달러 약세 사이클이 시작된다면, 한국 증시는 또 한 번의 큰 변화를 맞을 수도 있다.

과거 패턴을 보면, 달러 약세기에는 코스피 PBR이 리레이팅이 되었다. 현재 1.0배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단순 계산으로도 아직도 업사이드가 높을 수 있다.

 

물론 과거가 미래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달러의 흐름을 주시하는 것이 한국 증시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 중 하나라는 점이다.

 

 

마치며...

한국 증시의 역사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강세장에서는 누구나 예상하는 수출 대형주보다는, 소외받던 내수주들이 더 큰 수익을 가져다줬다는 것이다.

 

달러 약세 사이클이 언제까지 진행될지 모른다. 2018년 같은 일시적인 현상일 수도 있고 장기 추세 전환의 시작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떻게 될지 알 수는 없지만, 과거의 패턴을 기억하는 투자자들이 더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